교육자

난 원래 프로그래머로 직업을 정한 게 아니라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. 학원 강사를 한다든지 교수가 된다든지(교수는 완전한 교육자는 아니긴 하다) 뭘 하든 후배 프로그래머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었다. 원래부터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프로그래밍을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.

하지만 지금은 좀 다른 것 같다. 교수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아직 있기는 하지만 내가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바뀐 게 꽤 크다. 예전에 학원에서 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야 아이들이 내 설명을 잘 이해하고 따라와 줬고 그래서 보람도 있었지만 프로그래밍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약간 예체능 같은 성격이 끼어 있는 분야다. 재능이 안 따라주면 이해 자체가 안 되거나 이해를 해도 따라 올 수가 없다. 방정식 풀이 과정을 보고 이해는 해도 왜 그렇게 해야 풀리는 지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.

학원에서 일 할 때야 내가 숙제를 낼 필요도 없었고(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설명만 해 주면 되는 일이었다) 학원이기 때문에 숙제를 알아서 잘 해 왔지만 대학교 동아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전혀 달랐다. 최소한 동아리니까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온 아이들이겠지 한 것부터가 문제였다.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온 아이들이고 딱히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. 나는 뭔가를 가르칠 때 잘 따라오나 알기 위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냐 하고 자주 묻는 편인데 수업 때는 쉽다고 다 알겠다고 해 놓고선 뒤에 가서 하나도 모르겠다고 말하면 의욕이 확 떨어졌다.

게다가 요즘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어서 걱정이다. 게임은 이 시대 문화와 기술의 총 집약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모든 게 다 들어 가 있다. 그것과 별개로 다 똑같은 게임에 이미지만 바꿔 만든 게임들이 흥하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프로그래머가 딱히 할 수 있는 건 큰 회사가 아니고서야 별로 없다. 그렇다고 해서 게임 개발자가 되겠다는 학생들이 문제인 건 아니지만 이쪽 아이들은 헛된 착각이 커서 내가 도와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도와줘서 보람 되는 것도 없다. 내가 돈 받고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.

수준

내가 안 좋은 학교를 다니는 건 맞다. 하지만 그렇게 수준이 낮은 건 아니고 다른 학교들도 다 비슷한 환경이다. 옆 학과인 일본어 학과는 졸업시험을 쳐서 실력 미달이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. “일본어과 졸업자는 최소한 이 수준은 보장한다”라는 것이다. 하지만 컴퓨터공학과는 그냥 학점만 채우면 졸업을 시키는 과라고 불러도 문제 없을 수준이라 학부 졸업생들의 수준이 처참하다. 내가 학부생일 때는 그 편견 때문에 어딜 가든 “학부생 2학년이 해 봤자 얼마나 하겠어” 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졸업하고 나니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간다. 물론 대학교 4년의 기간은 고등학교 3년보다 훨씬 짧고 학교마다 배우지 않는 과목이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(우리 학교는 리눅스를 안 가르친다)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나 싶은 것들도 하나도 모르는 졸업자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된다. 졸업작품을 만들 실력이 안 돼서 1학년 실습 과제 수준의 프로그램을 짜서 졸업하는 학생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. 나는 석사 학위를 딸 생각이긴 하지만 나조차도 이게 “나는 학부생 수준이 아닙니다”라는 의미를 두고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게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한다. 분명 난 뭔가 더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대학원에 왔지만 잘 모르겠다.

개인적이며 사회적인 문제

굳이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이 분야 외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일들이 크게 있고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. 나와 같은 사람들은 집 밖에서도 갈 수 있는 화장실이 필요한 것 뿐인데 기업들은 그걸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만 본다. 기업이 돈 버는 게 중요한 거 누가 몰라서 말하는 게 절대 아니지만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그 얘기를 들며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한다. 차라리 말을 하지 말자.